창원 역사

1945년

창원군인민위원회가 결성되다. 10월 14일 창원농민조합이 결성되다.
11월 1일 창원·마산지역 등을 담당하는 미 57대대가 마산에 도착하다.
12월 마산군정청이 정식으로 발족하다.

1946년

해방병단을 조선해안경비대로 개칭하고, 진해특설기지설치(해군진해특설기지, 해군진해통제부, 해군통제부, 해군작전사령부 제7진해기지 전단으로 개편)되다.

1949년

마산시가 개청되고 마산항이 재개항되다.
한국 해병대 창설되고, 이승만대통령과 자유중국 장개석 총통의 진해회담이 열리다.

1955년 9월 1일

진해읍이 시로 승격하다.

1956년

마산화력발전소 완공, 발전 시작하다.

1960년 3월 15일

3·15마산의거가 일어나다.

1963년

제1회 진해군항제 개최되다.

1970년

마산수출자유지역 설치되다.

1973년

남해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창원이 기계공업기지로 설정되다.
창원면, 상남면, 웅남면 전역과 내서면의 구암, 합성, 회성, 두척의 4개 리와 구산면의 예곡, 우산, 현동, 덕동의 4개 리가 마산시에 편입되고, 웅천면 전역이 진해시로 편입되다.

1974년 4월 1일

건설부고시 제92호로 마산시의 두대동, 덕정동, 삼동동, 반송동, 연덕동, 용지동, 목동, 토월동, 외동, 정동, 가음정동, 남산동 등 12개 동 전역과 서상동과 27개 동 일부 지역 43,342㎡를 대규 모 기계공업기지건설을 위하여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지정하다.

1975년

거제군 저도(猪島), 망와도(亡蛙島)가 진해로 편입되다. (대통령령 제7818호)

1976년 9월 1일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가 설치되다. 관할지역은 마산시의 용지동, 성주동, 웅남1동, 웅남2동, 상북동, 팔용동, 삼귀동이다.

1976년

가포해수욕장 폐쇄되다.

1977년

구마고속도로 개통되다. 통합 마산역이 완공되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 일어나다.

1980년

창원시가 설치되고 창원군을 의창군으로 개칭하다.
1980년 4월 1일자 법률 제3188호로 창원지구출장소 관할 전역과 마산시 의창동을 편입하여 18개 행정동으로 창원시를 설치하다.

1983년

경남도청과 경남도교육청을 창원으로 이전하다.
창원군 웅동면 편입되어 대통령령 제11027호 옛 웅천현 지역이 진해시가 되다.

1989년

합포·회원출장소 설치되다.

1990년

합포구와 회원구로 승격 설치되다.

1991년

의창군을 창원군으로 개칭하다. 마산 새 시청사 준공되다.

1992년 5월 1일

창원지방법원과 창원지방검찰청이 이전하다.

1993년

진해에 속해있던 저도(猪島), 망와도(亡蛙島) 거제군으로 환원되다. (대통령령 제14006호)

1995년 1월 1일

창원군이 해체되어 마산시, 창원시에 통합되다. 즉 창원군의 동면, 북면, 대산면이 창원시에 통합되고, 창원군 5개 진전, 진북, 진동, 구산, 내서면은 마산시에 통합되다.

1997년 7월 14일

창원은 전국 최초로 ‘대동제’를 도입하여 기존의 시 지역 24개 동을 12개 동으로 통폐합하다.

2004년 7월 1일

진해 새 시청사 준공되다.

2008년 7월 1일

마창대교가 개통되다.

2008년 10월

창원에서 람사르총회가 개최되다.

2010년 7월 1일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의 통합으로 창원시가 출범되다.
의창구, 성산구, 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 진해구로 개편되다.

1910년

창원부를 마산부로 고치다.
웅천은 마산부 관할구역으로 개편되고 일본이 군항 설치공사를 개시하다.

1911년

마산항이 폐쇄되고 일본과의 단독무역만 허용하다.

1912년

웅중면과 웅서면 일부를 마산부 진해면(웅천, 웅동 제외)으로 개편하고, 송진포의 일본해군 진해방비대가 진해로 이전하다.

1913년 4월 21일

마산포의 각국 조계가 폐지되다.

1914년

마산부청이 있던 외서면을 따로 떼어 마산부라 하고, 창원부가 창원군이 되면서 그 외 지역은 창원군에 속해지다. 창원군이 마산부와 분리되어 창원군 관할로 변경, 진해만 요새 사령부가마산에서 진해로 이전되다.

1915년

진해 청년단 조직되다.

1916년

진해군항에 요항부 개청하다.

1918년

웅읍면을 웅천면으로 개칭하다.

1919년 12월 5일

남면청년회 결성되다.

1923년

철도 경남선 마산 - 군북간 개통되다. 적성회 창립되다.

1925년

도청소재지가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되다.
철도경남선 마산 - 진주간이 개통되다.

1927년

마산 - 진해사이의 철도가 개통되다.

1928년

신간회 창원지회가 설립되다.

1931년 4월 1일

부령 제103호에 의하여 진해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창원군이 1읍 14면이 되다.

1932년

창원군 북면에서 창원적색노동야학회가 조직되다.

1941년

결핵요양원이 설립되다.

1942년 9월 30일

부령 제242호로 마산부의 관할구역이 확장되다. 즉 창원군 창원면의 봉암리, 내서면의 교방리, 회원리, 산호리, 석전리와 구산면의 가포리가 마산부에 편입되다.

1945년

해방병단(海防兵團)과 조병창이 설치되다.

1398년 태조 7

내이포만호를 도만호(우수영)로 승격하다.

1405년 태종 5

창원향교가 지금의 위치에 건립되다.

1407년 태종 7

내이포(제포)를 왜국에 개항하여 왜선의 정박을 허가하다.

1408년 태종 8

의창과 회원의 양 현을 합쳐 창원이라 개칭하고 부(府)로 승격하다.

1415년 태종 15

창원도호부로 승격되다.

1419년 세종 원년

대마도정벌에 따라 왜와의 통교가 단절되다. 경상도우수영을 거제로 옮기고 제포에는 만호를 두다.

1423년 세종 5

내이포와 부산포를 다시 개항하다.

1436년 세종 18

내이포만호를 경상우도 도만호로 승격하다.

1437년 세종 19

웅신현을 웅신진으로 승격, 수군첨절제사를 두어 김해부사가 겸무하다.

1439년 세종 21

웅천읍성 완공되다.

1443년 세종 25

계해조약으로 삼포인 내이포에 왜인의 거주를 허락하다.

1445년 세종 27

최윤덕 장상 세상을 떠나다.

1452년 문종 2

웅신현(현 웅천동)과 완포현과 천읍부곡과 창원의 3개 마을을 합쳐 김해도호부 임내의 웅신진을 웅천현으로 승격시키고 첨절제사가 현감을 겸임하다.

1462년 세조 8

안골포에 안골포만호를 두다.

1486년 성종 17

제포진성 완공하다.

1490년 성종 21

안골포만호진에 안골포진성 완공되다.

1510년 중종 5

삼포왜란이 일어나고, 웅천현이 웅천도호부로 승격되다.

1512년 중종 7

웅천현으로 되돌려지고, 제포를 개항하다.

1544년 중종 39

제포왜관을 폐쇄하다.

1592년 선조 25

5월 7일 합포해전이 일어나다.
안골포해전에서 승리하다.

1593년 선조 26

웅천의 남산과 안골포, 명동 등에 왜성이 축조되다.

1601년 선조 34

창원대도호부로 승격되다.

1603년 선조 36

경상우도병마절도사영을 진주로 이전하다.

1617년 광해군 9

칠원현이 창원에 합쳐졌다가 분리되다.

1627년 인조 5

진해현(현재의 진동, 진전, 진북지역)이 창원에 소속되다.

1629년 인조 7

진해현이 창원에서 분리되다.

1661년 현종 2

창원읍에서 전패가 분실되어 창원대도호부를 현으로 강등시키다.

1670년 현종 11

다시 창원대도호부가 되다.

1760년 영조 36

마산창이 설치되다.

1801년 순조 1

창원에서 괘서사건(폭정을 비방하는 글을 돌렸던 사건, 방서사건)이 일어나다.

1893년 고종 30년 10월 15일

창원지역에서 반봉건농민항쟁이 일어나다.

1895년 고종 32

23부제의 실시로 진주부 예하 창원군, 웅천군이 되다.

1896년 고종 33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13도제 실시에 따라 경상남도의 창원군, 웅천군이 되다.

1898년 고종 30

마산포의 개항업무를 담당할 ‘창원감리서’가 설치되다.

1899년 광무 3

5월 1일 마산포가 일본에 의해 개항되다.
5월 6일 칙령 제16호로 창원군은 창원부로 승격되다.
창원감리서 개설, 각국 영사관부지 및 외국조계지 확정되다.

1903년 광무 7

칙령 제10호로 창원부가 창원군이 되다.

1905년 광무 9

일본이 가덕도 외양포에 진해만요새사령부를 설치하다.
마산·삼랑진간 군용철도 개통되다.

1906년 광무 10년 9월 24일

칙령 제48호로 창원부로 개칭하고 부윤이 두어지다. 같은 날 칙령 제49호로 진해군 대산면과 칠원군, 구산면이 창원부에 편입되다.

1908년 융회 2년 9월 14일

칙령 제69호로 진해군 웅천군, 김해 대산면, 칠원 구산면을 창원부에 편입시키고, 칠원군을 함안군에 편입시키다.

1909년 융회 3

사립 창신학교 설립하다.

982년 성종 1

합포에 석두창이 설치되다.

1018년 현종 9

의안군과 합포현, 웅신현이 금주(지금의 김해)에 소속되다.

1227년 고종 14

웅신현에 왜구가 침입하였으나 별장 정금억 등이 격퇴하다.

1263년 원종 4

수도물도에 왜구가 침입하여 곡식과 포(布)를 약탈하다.

1271년 원종 12년 2월

삼별초가 합포에 출몰하여 감무(현을 다스리는 지방관리)를 생포해 가다.

1271년 원종 13년 11월

삼별초가 합포를 공격하여 전함 22척을 불사르다.

1273년 원종 14년 1월

삼별초가 합포를 공격하여 전함 32척을 소각하고 몽고병 10명을 죽이다.

1274년 충렬왕 즉위년

여·원(麗元)연합군에 의한 제1차 일본정벌군이 합포에서 출발하다.

1281년 충렬왕 7

여원연합군에 의한 제2차 일본정벌이 시작되다.

1282년 충렬왕 8

합포는 회원현으로, 의안군은 의창현으로 개칭하여 각각 현령을 두었다.

1353년 공민왕 원년 4월

왜선 350척이 합포에 출몰하여 노략질하다.

1384년 우왕 10

완포현에 고산성 축조하다.

676년 문무왕 14

마산은 골포현이 되고, 창원은 굴자군이 되다.

757년 경덕왕 14

골포현이 합포현으로, 굴자군은 의안군으로 개칭되다.
소속된 현이 셋이었는데, 칠제현 (漆提懸):함안군 칠원면,
합포현 (合浦懸):마산시 웅신현 (熊神懸):진해시 성내동 이다.

764년 경덕왕 23년 7월 15일

백월산남사가 창건되다.

835년 흥덕왕 10

무염국사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주사를 창건하다.

897~912년 효공왕대

진경대사 심희가 봉림산에 있던 작은 절을 수리하여 봉림사라 고치고 봉림산문을 열었다.

기원전후

골포국이 만들어지다.

209년 신라 내해왕 14

골포국을 포함한 포상팔국이 가라 혹은 아라를 공격하다.

212년 신라 나해왕 17

골포국 등 3국이 갈화성(지금의 울산)을 공격하다.

300년대

창원지역에 탁순국이 형성되다.

364년

백제인 구저 등 3인이 탁순국에 이르러 왜와 통하는 길을 묻다.

530년

탁순국이 신라에 항복하다.

창원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 발굴된 자료에 의하면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면서 우리 고장에도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동읍 용산리 합산마을의 조개더미에서 채집된 빗살무늬 토기 조각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청동기 시대는 대체로 기원전 10세기경부터 시작되었고, 창원에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성산 패총 최하층의 무문토기는 후기 무문토기가 주류를 이루는데, 무문토기의 전통은 원삼국시대의 토기인 김해토기에 이어지고 있다.

우리 고장에서 확인된 이 시기의 유적은 성산 패총, 삼동동 유적, 도계동 유적, 다호리 유적, 화천리 유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