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마산 최초 상수도를 아시나요?
“마산최초 상수도? 모르겠는데요.”
“얼핏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아니오. 몰라요...”
“우리 지역에 그런 곳이 있어요?”
창원을 기억하다
역사 1분다큐 RE:
[상남영화제작소]
마산 최초 상수도
봉암수원지
봉암수원지
-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 산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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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용산 중턱 고요한 호수
봉암수원지
도심 속 유원지
봉암수원지의 시작
콜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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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곳의 시작은..
콜레라였다.
일제강점기 1920년
동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콜레라
-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 산 12-1
na>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
동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콜레라
1920년 8월경에
마산 시내를 엄습한 콜레라로 인해서
아침에 만난 사람이 저녁이 되면 격리병원이나 묘지로 가고 만다.
- 김형윤의 [마산야화]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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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인구 2만의 도시 마산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콜레라로 목숨을 잃었다.
전염병에 취약한 공동우물 대신
깨끗한 상수도가 필요했던 일본
na>
콜레라 전염에 취약한 공동 우물대신
깨끗한 상수도가 필요했던 일본인들.
“팔용산 입구를 막아 상수도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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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용산 입구를 막아
상수도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1927년 5월 ~ 1930년 3월까지
3년간 조선인의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마산 최초 봉암수원지
- 수원지에서 정수장까지의 송수관이 표시된 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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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마산최초 상수도
봉암수원지
하지만
조선인들의 몫이 아니었던
봉암수원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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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산최초 상수도는
조선인들의 몫이 아니었다.
허정도 경상남도 총괄 건축가
“봉암수원지를 처음 건축할 때는
1만 6천 명의 급수를 담당하겠다고 지었는데
실제 준공이 되고 난 이후에는
4천 명이 먹었다고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일본인들이 모여 사는 신마산에
일본인 4천 여명이 살았기 때문에
그 일본인들과 일부 부자 조선인들에게
급수가 되어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수돗물을 먹는 사람이 4천 명
가구수는 800호다.
- 1941년 [양진마산의 전모]中에서
- 약신마산의 전모
일제강점기 마산 지역의 지리,역사,공공 및 민간단체, 산업 등
지역의 전반벅 현황을 담아 편찬한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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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최초의 상수도였지만
대다수의 조선인들은 먹을 수 없었던
봉암수원지 물
90년 전
식민지 조선의 아픔을 안은 채
오늘도 우리 곁에 흐르고 있는
봉암수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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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전,
식민지 조선의 아픔을 안은 채,
오늘도 우리 곁에 흐르고 있다.
창원 역사 1분다큐 RE: PLUS CHANGWON
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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