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
문신과 같은 존재를 가졌다는 것은 조국의 명예...
13, 4세때 벌써 그는 남의 집 일을 하며 스스로의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런 소년시절이 암담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암담하지 않을 까닭은 이 무렵 미술에 대한 개안이 있었다는 사실로서 알수가 있다.운명에 순종하면서도 그
흐름에 맡겨버리지 않고 그 흐름을 자기 뜻하는 방향으로 돌릴줄 아는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그는 궁박한 생활, 고난에 벅찬 생활을 하면서도 그 궁박에 지치지도 않았고 고난을 고난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가히 희귀한 품성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그런데 그러한 품성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대답은 뜻밖에도 간단하다.그는 자기가 할 일을 알고 있었다. 나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었다.자기속에 무궁한 광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예지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고독속에서도 슬프지 않았고 실의 속에서도 시들지 않았고, 가치없는 자기수련을 감행할 수 있었다.
천재에게 만이 허용된 행운이란 천재가 아니고선 포착할 수 없는 기회를 말한다. 설혹 그런 기회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천재가 아니라면 보람없이 지나쳐 버릴 기회라는 뜻으로 된다. 우선 그를 프랑스에 보내게한 충동이 그런 것이었다. 많은
화가들이 프랑스로 간다. 물론 진지한 예술에의 정진을 다짐한 출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욕엔 다소의 허영, 또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적지 않게 섞여 있었을 것이고 굳이 내적 필연성이라고 할만한 절박함을 내재해 있을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신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를 프랑스로 보낸 충동엔 허영도 없었고 요행을 바라는 마음도 없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정진의 과정에서 용솟음치는 내적인 필연성이 그를 프랑스로 끌고 갔다. 그가 선과 형체의
색채로써 표현한 그림은 일거에 우주의 본원, 생명의 본질에 뛰어들려는 박진력의 표출인 동시 그 의지와 정열이 바로 예술일 수 있다는 추상회화의 정취를 말한다. 그런가 하면 그의 조각은 우주와 생명의 운율을 시각화 해 놓은 갖가지
바리에이션이다.원과 호의 직선과 각의 대칭적 조화는 불협화음까지 거느려 결국은 화음으로 이끄는 공간적인 음악이 되어 음악지상의 음감을 구성하는 절묘함을 보인다. 일러 나는 신비라고 하는 것이다. 그 광택, 그 섬세, 그 정교,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생명력의 리듬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붙여야 하는 것일까?"이것으로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느냐", "표현하려 한게 아니고 그자체가 표현된 거다. 요컨대 숨겨져 있던 생명이 그런 미로써 나타난거다. 그러니 무어라고 할수가 없다."이런
선문답처럼 될수 밖에 없다는 것은 시시각각으로 유동하면서도 영원한 생명의 순간순간을 감당할 말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다.다시말하면 언어로써 설명할 수 없고 심행처마저 다한 곳에서 문신의 예술은 스스로 조형하고 있는 것이다.나는 문신과
같은 예술가를 동시대인으로 가졌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그러한 문신을 개인적으로 친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의 자랑으로 안다. 동시에 문신과 같은 존재를 가졌다는 것이 조국의 명예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