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SHIN 작품세계

최성숙
  • 문신 미술관 前관장
작가 文信은 1923년 1월 16일 일본국 사가켄 타케오에서 아버지 文贊伊와 일본인 어머니 천면다기 사이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出生 후 바로 부모님이 異國의 탄광지에서 일을 하는 동안 떨어져 탁아소 생활을 하였고 당시 조국이 처한 암울한 상황과 그에 따른 苦難의 가시밭길은 작가 문신의 풍운아적인 삶과 세기적 조각가로 발돋움하는 토양과 견인차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문신은 그의 나이 5세 때 일본인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고 향리 마산에서 할머니 손에서 자라면서 고독하고도 어려운 남다른 고생으로 강인한 인간 정신을 연마하여 불사조의생존 철학과 방법을 스스로 體得하여 나갔다.

한량이며 예술가 기질이 다분했던 아버지 밑에서 일곱 명의 서모를 모시면서도 천진함과 순진 무구한 예술가적 기질을 잃지 아니한 그의 인간 정신과 예술혼은 시대 상황을 넘어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에서 되살아 나는 조타수인 것이다.

문신은 모차르트와 같이 열광적이고도 치열한 예술적인 삶을 살다간 이 시대가 낳은 거의 완벽한 세계적 대 예술가 였다.

어려웠던 일본 고학시절과 6.25동란, 結婚과 離婚 그리고, 渡佛 후 라브넬성의 고성 修飾 작업등으로 시작된 인생 軌跡은 몸으로 여물어 혼으로 빚어 낸 "명상의 신비"라는 문신 예술의 영감의 프로세스로 작용하게 된다. 두 번의 결혼에 실패한 그는 재차 도불하여 세 번째의 여자인 독일인 리아ㆍ그랑빌러를 만나 파리에 定着하게 된다. 그의 어렵고 고독한 이국 생활은 온통 조국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면서 남도의 푸른 물결이 일렁거리는 고향 마산의 추산동 언덕배기에 돌아갈 환상을 꿈꾸며 생활하여 왔던 것이다.

1978년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에서 당시 괴텡겐 대학 유학생으로 어학 연수중인 한국화가 최성숙을 만나 서럽고 고독했던 20여년간에 걸친 파리생활을 청산하고 귀국을 결심. 1980년 10월 영구 귀국하여 그가 꿈에도 그리던 고향 마산에 정착하게 된다. 그 당시 현대 화랑 전시를 시작으로 수 차례의 화랑 초대전을 개최, 기금을 마련하여 고향 마산에 문신 미술관 건립이라는 대 역사적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14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국내의 화랑초대전과 동서해빙에 따른 동ㆍ서유럽순회전, 프랑스 파리시 초대전 등을 통하여 한국 예술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세계 조각계의 이목이 되어 민간외교의 전령사 역할을 함으로서 국위를 선양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대운은 조각가 문신에게도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어 25m 높이의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을 올림픽 공원에 세워 세계인의 격찬을 받아 이 시대가 낳은 세계적 조각가 문신의 명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그간의 업적으로 인하여 1992년 프랑스 정부로 부터 예술문학영주장을 수여받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세종문화상을 수여받았다.

1994년 MBC, 조선일보사 공동주최로 문신 예술 50년 회고전을 개최함으로써 반세기에 걸친 문신예술을 회고하고 그해 5월 그가 꿈에도 그리던 문신미술관을 개관하여 주옥 같은 명품들을 전시함으로써 문신미술관을 민족 예술 문화의 전당으로 자리 잡게 한다.

그러나 문화정책에 대한 잠들라 차마 잠들지 못하는 비통한 심정과 경계를 너머 이상을 그리다가 95년5월 끝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를 뒤로한 채 "생명의 소리"들인 저 주옥 같은 명품들을 이 땅의 곳곳에 남겨놓고 영생의 세계로 떠나신 것이다.

살아서 못 다한 예술세계를 부활시켜 민족문화와 더불어 영생할 것을 약속하고 선종하는 그날까지 예술혼을 보임으로써 우리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예술적 전설로 되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변하여도 예술은 영원하니 예술을 사랑하여 달라"는 遺言을 모두에게 남기도 떠난 문신은 이제 저 하늘의 찬란한 별이 되어 이 땅의 예술문화를 밝힐 것이다.

그는 생전에 그토록 갈망하던 조국과 고향 마산에 문신미술관을 건립하고 저 "신비로운 혼율" 인 유화, 채화, 석고 원형조각 및 조각품들을 민족예술 문화발전을 위하여 조국에 바쳤으니, 이제 우리 모두는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가신님의 예술세계와 정신을 영원히 유지,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작크도판느
  • 국제예술평론가협회 정회원
'문신'은 위대한 예술가의 한 사람이며, 미래가 기억할 예술가이다. 어느덧 문신의 작품은 파리에서 받아 들여지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그의 작품이 다른 작가의 작품과 뚜렷하게 구별되면서 부터 파리 화단에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완전히 개인적인 역량으로 작품에 대한 허황한 광고없이 말이다.반드시 미술전문가나 비평가가 아니고 단순한 예술애호가라도 그의 그룹전이나 화랑에서 이예술가의 작품을 한번이라도 대해 본 사람이면, 또 그런 기회에 이 작가의 다른 작품앞에 섰을 때 순간적으로 '이것은 문신이다' 라고 말 할 것이다. 마치 사람들이 이것은 '칼드'다, '헨리무어'다, 또는 '자코메티'다 라고 말하듯 문신의 작품이란 말이다.

문신은 말이 적은 사람이며, 그의 말은 곧 작품의 핵심이랄 수 있다. 이를 테면 자신의 예술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조각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나는 많은 데생을 한다. 그것들은 단지 선과 선들로 연결된 원, 타원, 또는 반원만으로 구성된 것이다. 종이 위에 전개된 이 원과 선들을 하나의 구체적인 量으로 만들기 위해, 단단한 재료의 한 덩어리에다 직접 깎기 시작한다. 이 量들은 무엇보다 먼저 나의 포름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들에는 여하한 구상적 현실의 재현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자연스러운 형태들이다.
그것은 그들 자체의 현실을 가진 형태들이다.

즉 주제가 없지만 그들 자체의 실재를 가진 포름이다. 오직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작업을 하는 동안에 이 형태들이 생명력을 가지게 되며 궁극적으로 생명의 의미성을 가지게 되길 바랄 뿐이다." 언제나 나에게는, 이 예술가의 작품에서 가장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위대한 독창성이다. 이 독창성은 일의 기술적 세련, 영감의 자유, 전통의 존중 이 세가지의 근본적인 질이 놀라울 만큼 잘 융합되어 이루어졌다. 우선 기술적인 세련에 대해서 살펴보자.

조각작품의 형태의 표면들은 망인이라도 손으로 만져보면 그 청초함과 풍요성을, 그리고 민감한 감촉이 전달되는 기쁨을 느끼게 될 정도로 많은 노력과 인내로써다듬어졌다. 다음 영감의 자유로 말하자면 문신의 가능성은 무한에 가깝다. 이 영역에서 그의 대담성은 매우 크다. 그는 현대예술에서 극소수의 예술가들이 감히 하는 것을 감행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조각의 하나 하나는 생명 그 자체, 즉 자연속의 식물, 곤충 혹은 새들의 모습과 닮은 시메트리(좌우균제)의 생명의 원리로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 창조적 원칙의 귀결로 문신의 모든 작품은 매혹적이며 거대한 보석과도 같다.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오브제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그의 회화의 세계에 있어서도 다를 바 없다. 그의 회화도 주의깊게 감상하면 조각과 마찬가지로 조화된 생명률의 법칙에 따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바로 이 생명률의 법칙을 한국의 옛 예술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터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대 한국의 예술가인 문신은 고려시대의 도예가와 서로 따뜻하게 만나는 점도 바로 여기에서다. 여하튼 나로서는 문신은 위대한 예술가의 한 사람이며, 미래가 기억할 예술가이다. 왜냐하면, 문신은 전위작가인 동시에 한국예술의 전통을 여러 세기에 걸쳐 심어 놓은 옛 거장들의 특질을 갖춘 타고난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피에르 레스타니
  • 프랑스 평론가
우주와 생명의 음률을 시각화한 바리에이션 서울 잠실부근 어느곳에나 수은빛 강렬한 은색의 물체가 올림픽 공원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25미터나 되는 높이의 기념비적인 조각품으로 한국인 작가 문신의 하늘에 한알씩 엮어진 거대한 묵주알 인양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그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55개의 반구형으로 구성된 두개의 탑이 평행으로 아랫부분을 8미터 폭으로 된 앞.뒤에 또한 반구형의 구성체가 놓여졌다. 이것이 직경 40여미터의 둥근 대좌를 겸한 수중에서 이 조각품이 솟아 있다. 그 제목 " -올림픽의 단합- "은 이 작품의 상징적인 성격을 잘 나타내 준다. 조각의 하나 하나는 생명 그 자체, 즉 자연속의 식물, 곤충 혹은 새들의 모습과 닮은 시메트리(좌우균제)의 생명의 원리로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 창조적 원칙의 귀결로 문신의 모든 작품은 매혹적이며 거대한 보석과도 같다.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오브제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은 그의 회화의 세계에 있어서도 다를 바 없다. 그의 회화도 주의깊게 감상하면 조각과 마찬가지로 조화된 생명률의 법칙에 따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올림픽의 단합 - 엇갈리게 연결된 반구형은 외형을 초월하여 이 작품은 환상적인 맥락을 이루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작품 전체의 강렬한 다이나미즘은 반복에서 기인되는 단조로움을 상쇄하는 효과를 갖는데 그러나 이 반복은 벨기에 작가 Pol Bury의 작품 "공의 연못(Fontainea Boules)"에서는 매우 단조로움이 두드러진 것이다. 문신 작품에서는 표면의 떨림이 이 금속 특유의 반짝이는 효과에 의해 강조되는 파상적인 리듬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비가 온 후에 맑은 여름 햇살 아래서 이 쌍둥이 자매같이 붙어있는 두 탑을 보아야 한다. 무한히 펼쳐지는 푸른 하늘에 두개의 원형 기둥위에 세워진 이 작품은 바로 반짝이는 빛이 근원이 되며 그 빛을 사방으로 엇갈리며 그 광채를 연쇄적으로 발산하는 것이다. 문신의 작품은 공원의 잔디 풀잎에서 부터 넓은 빈공간으로 까지 확산된다. 이 작품의 느낌은 비누방울 같은가 하면 수정알 같기도 하고 그 빛남은 유리알의 깨짐과 같은 불안감은 주지 않는다. 대단히 강렬한 시각효과는 일반 감각을 초월하여 현실과 비현실 물체와 비물체의 마술과 같은 차원까지도 창조해 낸다. 올림픽 공원내의 조각품중 문신의 작품이 가장 인상적인데, 그것은 그 크기 때문이 아니고 그 작품이 지닌 현대성 때문이다. 이 작품은 우리의 자세를 새로이 하게 하며 우리 자신을 초월하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이 작품의 진정한 존재가 시적인 차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쟝.마리 듀노와이에
  • 르.몽드 지 평론가
비너스상에 비치는 무한 기원 문신의 조각은 중압적이거나 온화한 거상에서부터 소품, 대작에 이르는 걸작의 세련됨에 이르기까지, 그의 엄청난 다양성에서 엿볼수 있듯이, 풍부한 종류의 목재와 금속을 집결시키고 있다. 특히 그는 금속을 다루고 있다. 그의 조각은 이 모든 소재의 대립의 미를 교감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측정하고 있는 대가의 대작들과 그의 조각을 견줄 수 있는 것으로 그 대답은 충분할 것이다.발걸음이 가벼운 후피동물이나 수많은 불가사의한 근원을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이 평온하게 거니는 실낙원에서 융기, 돌출하고 있는 예상스런 창조물들이 그의 작품에서 표출됨에도 불구하고 문신의 지극한 고요함에 마주서면 우리는 그 격렬함이나 도발성은 전혀 찾아낼 길이 없어진다 우리는 바로 "평온의 힘" - 정치적 암시와 거리가 먼 - 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 있다. 심오한 삶이 영구적으로 꿈틀대며 빛을 발산하는 곳, 면밀성과 관능미가 양존하는 그런 예리하며 광범위한 지역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의 우수한 회화작품의 선택에 의해서 또는 지속적으로 제작하며 발표되고 있는 회고적 푯대에 의해 우리는 문신이 반세기 동안 거쳐온 행로를 더듬어 볼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일본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그를 만나 볼 수 있다. 화가로서 자위하고 있는 이들이 그렇듯이 관찰력으로써만 현실을 대항하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완벽한 화가였다. 그는 두말할 것 없는 화가이다. 뛰어나게 확고한 능력으로 10여년 넘게 분출해 내는 풍경화와 정물화는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다. 1959년 까지 서양의 고전주의 양상이 드러나는 기운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탁월한 재능이 상승된 화가이다. 그러나 그의 생선, 딸기, 붉은 벽돌집, 친근감을 느낄수 있는 나날의 삶의 정경 또는 더욱 모던화된 스타일의 자화상을 본다해도 정반대의 세계로, 극의 세계로 접어들어 가고 있는 그의 갑작스러운 변신을 예견할 수 없다

아마 우리는 문신의 유럽으로의 출발과 1961년 부터 시작된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들추어 보아 그의 천업의 탄생을 직감해 볼 수 있다. 그의 자각은 뉴턴의 만류인력의 사과나 프르스트의 마들렌느 과자와 같이 잘 알려진 그의 일화에 여실히 반영되어 있다. 우리가 알기로 문신은 때때로 목수, 미장이, 석공 등의 고성의 복구작업을 해내며 사물의 실험성, 구체성, 견고성의 영감을 얻었던 것이다. 느낌에서의 신비 혹은 그들의 간명한 반영마저도 서서히 허물을 벗어내리고 험난한 자각의 세계인 극복해야 할 거칠은 "3차원적인 사실성"의 세계에 문을 두드린 것이다. 시각의 세계에서 손의 세계로 교차된 것이다. 수정하여, 친숙히 내면의 세계로 파고 들어가는 사물의 대결을 이제부터 그의 활동적 삶의 절대적인 원천이 된 것이다. 그는 자율적인 개념의 구체화를 위해 구상세계의 적인 새로운 사실주의를 착안하여, 우리가 통찰할 수 있듯이, 가장 견고한 사물을 자신이 손수 자르며 다룬것을 볼수 있다. 물론 거기엔 내밀한 정신이 그의 작품의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정신은 문신의 모든 작품의 제작을 이끌어가고 있음을 주지 할 수 있다. 그는 그것을 멀리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 세계의 구상을 위해 사전에 윤곽과 프로필로서 초안을 하며 대비하고 있다. 연필과 먹으로 그린 수없이 많은 예비 데생들은 그 세계를 실증해 주고 있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창작되고 있으며 또 그 후에도 제작될 그의 작품 실체의 볼륨과 동일하다고 하여 이 동일성은 전체의 체계와 같이 불굴한 수학 법칙에 의한 것처럼 그의 독창적인 우주관과도 흡사한 것이다. 그곳에는 구형의 숭고한 음영이 독설적으로 "영원한침묵" 과 완결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문신은 두드러진 중간 과정없이 - 그의 회화작품에서 드물지만 집요하게 표상되어 있듯이 - 사실주의의 향상이 짙은 구상세계에서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세계로 변모해갔다. 그의 작품의 초안, 크로키는 완성된 작품으로 오인 될 만큼 완결하며 원형과 타원형, 직선과 곡선은 낙원적인 정결함을 산출해내고 있다. 거기엔 시적 서정의 향내가 나며 우리의 내밀한 곳에 잠재해 있는 예민한 영역을 일깨워 주고 있다. 바로 이 부드러운 시성을 우리는 그의 총괄적인 조각에서 되찾고 있는 것이다. 그의 조각은 별들과 끊임없이 팽창해가고 있는 은하수 무리와 흡사한 것이다. 창조자의 폭발적인 비약을 지닌 운석의 떼와 같다고 할수 있다. 그들은 대기의 일시적인 변덕에 찢기고, 용수철 형태의 가닥을 꼬아 감기고, 원형으로 향기로이 피어 나기도 한다. 이 절제할 줄 아는 무리들은 짓누르지 않고 힘차게, 유아적인 기교주의에 빠지지 않으며 세련됨을 갖추어 우주공간을 점령하고 있다. 우리는 간명하고 매끄러우며, 광택이 나는 금속(스테인리스 스틸 혹은 브론즈)이나 목재(견고하며 희귀한 나무, 목판, 이국의 향나무)의 둥글게 어우러진 곡선의 형태에서 거칠함을 찾아내려 헛되이 애를 쓰고 있다. 그들의 표면은 윤이 나고, 갈리고, 닦이어, 빛을 흡수하기도 하며 애무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그들을 창작의 행복감에 참여시키고자 하고 있다. 그들은 문신의 모든 창작품이 그렇듯이 대지에 단단히 닻을 내려 확고부동한 틀을 뚜렷이 부각시켜주고 있다. 그의 호적수는 "우주를 향하여"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위에 설명했듯이 이와 같은 제목은 설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거대한 원판의 시리즈로부터 검소한 변모에 이르기까지 문신의 내밀한 욕망은 우주를 향하고 있는 것을 제공해주며 설명해주고 있다.

"조화"는 융화의 명목으로 네번에 걸쳐 반복해주며 표현해 주었다. 몇몇 그의 조각의 제목들은 - 일반적으로 조각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 그의 작품의 상세한 설명이다. "바다새" 나 "바다의 꽃" 이 두 작품의 예를 들어보자. 문신은 제작후에 그의 동료들이 그의 조각과 생성하고 있는 존재들과의 유사성을 지적하며 제의함으로써 그와 같이 제목이 유발된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확실한 제명이 주어져 있던 무제의 작품이건 문신의 작품은 그의 형체의 존재나 조각이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그들은 확고한 형체의 미에 의해 그 존재성을 확립시켜 주고 있다. 그 형체는 풍만하며, 볼륨이 두드러지며, 대부분 하늘을 떠도는 유성과 같이 순환의 동작을 연상시키는 타원형으로 되어 있다. 그들은 유연하며, 부풀어 있고, 돌며, 뒤틀리며, 팽창되어 있으며, 홈이 파이고, 길게 벗어나 그런 구형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거기엔 끊임없이 조화가 존재하고 있다. 미세한 불균형의 리듬 즉 가식적 균형이 부여된 작품들도 포함되고 있다. 그와 같은 구조는 수직으로 치솟아 있으며 그 우뚝솟은 모습은 마치 그들이 늘 그렇게 존재해 왔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자세로 보인다.

우리는 그들을 보며 어떤 상징을 부여하기를 갈망한다. 또 그들에게 토템, 우상 또는 지상에 인간들이 숭배하고 있는 신들의 전통의식을 찾아내려하고 있다. 이미 몇몇 비평가들이 이점을 지적하였다. 그렇다면 날렵한 목재로 된, 평행선의 나래를 펴고 있는 수평으로 제작된 훌륭한 작품들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창세기의 넘실대는 정신이 그 물위에 맴돌고 있는 것일까? 우리도 이제 부인할 수 없는 확고한 추상작품에서, 앞에서 언급한 유사성 뿐만이 아니라 "잘 손질된" 짐승, 새, 곤충, 개미, (대형의) 나비 등의 유사성의 흔적을 발견하여 비유하며 이끌어 가보자. 문신은 동화된 형태들을 부인하지 않지만 자신의 작품은 "자연의 생성 존재들의 묘사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형체"라는 것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넋을 잃게하는 동상으로 된 예상한 동물원으로 간주하고 근원을 알수 없는 모든 생명체들을 광대한 힘의 저장고라고 간주하여 토론의 격을 높여 보자. 이 세상의 모든 에너지가 바로 그곳에 응결해 있다. 정신세계를 이해하고, 잉태하며, 그 세계의 활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있는 이들에겐 감동적인 불길은 확고한 것이다. 위의 사실은 하나의 소견이 아니며 수수께끼도 아닌 현실이다. 수많은 표적에 의해 그 사실은 여실히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느끼지 못하며 무관심한 이들에겐 비물질적이며 미세한 이 불길은 소위 짐승이라든가 신들이라는 외향에 감춰져 있는 것이다. 문신은 그들에게 생명을, 자신의 삶을 불어 넣어 주고 있다. 그를 아끼는 감상자와 더욱 더 알고 싶어 갈망하는 관람자에게 그는 강렬함과 감동을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의 작품에서 풍겨나오는 강렬한 관능미에 민감하나 거기엔 헤아릴 수 없는 풍요가 넘치며, 풍성한 곡선과 팽창, 관능적인 굴곡, 날카로운 선이 격투라기 보다는 - 가죽으로 쌓인 검의 애무하는 듯한 창의 격투를 상기 시켜주는 것이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면 - 욕망의 자극대로 볼 수 있는 미온한 매력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것은 비너스신을 향하고 있는 무한한 기원이다. 되찾은 고요함을 우아하게 두르고 끊임없이 새로운 경향의 작품과 광대한 창작품이 여기에 펼쳐져 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문신의 고국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것을 상기 시켜주고 있다.

룩벨
  • 추상화가
모든 작품은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나 모두 개성과 충만함이 깃들어... 나는 문신을 알고 있으며 또한 그의 조각을 알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문신을 그의 조각을 통해 알고 있다. 왜냐면 그의 작품은 그를 대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는 내용없이 작품을 가지고 허풍떠는 성격의 인간이 아니다. 그의 조각작품들의 포름은 특이하다. 섬세성과 우아함과 긴장감을 띠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마치 식물의 성장과정과도 같이 모든 기관이 무리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문신의 작품을 보면 모든것이 하도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다른 형태의 작품을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볼륨은 너그러운 모습을 띠고 있고 아라베스크는 아주 매력적이다. 그의 작품들은 먼 나라의 신비 같은 것을 담고 있다. 나는 그의 소품도 보았고, 아주 대담하게 공간을 향해 뻗어나간 대작도 보았다. (나는 문신의 탁월성의 하나가 용기라고 생각한다.) 모든 작품은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나 모두 개성과 충만함이 깃들어 있다. 그는 재료에 대해 매우 까다로운 편이다. 나는 그의 목각작품들이 특히 포름에 있어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업에 있어의 완숙성은 신념과 작품에의 사랑속에서 태어난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의 합성수지 계통 재료의 작품들은 우윳빛의 신비한 여인을 연상하게 해 준다. 문신의 꿈은 그의 침묵속에서 스스로 미소짓게 하는 이유임에 틀림없다.

이병주 문신과 같은 존재를 가졌다는 것은 조국의 명예... 13, 4세때 벌써 그는 남의 집 일을 하며 스스로의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런 소년시절이 암담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암담하지 않을 까닭은 이 무렵 미술에 대한 개안이 있었다는 사실로서 알수가 있다.운명에 순종하면서도 그 흐름에 맡겨버리지 않고 그 흐름을 자기 뜻하는 방향으로 돌릴줄 아는 지혜가 있었던 것이다.그는 궁박한 생활, 고난에 벅찬 생활을 하면서도 그 궁박에 지치지도 않았고 고난을 고난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가히 희귀한 품성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그런데 그러한 품성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대답은 뜻밖에도 간단하다.그는 자기가 할 일을 알고 있었다. 나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었다.자기속에 무궁한 광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예지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고독속에서도 슬프지 않았고 실의 속에서도 시들지 않았고, 가치없는 자기수련을 감행할 수 있었다.

천재에게 만이 허용된 행운이란 천재가 아니고선 포착할 수 없는 기회를 말한다. 설혹 그런 기회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천재가 아니라면 보람없이 지나쳐 버릴 기회라는 뜻으로 된다. 우선 그를 프랑스에 보내게한 충동이 그런 것이었다. 많은 화가들이 프랑스로 간다. 물론 진지한 예술에의 정진을 다짐한 출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욕엔 다소의 허영, 또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적지 않게 섞여 있었을 것이고 굳이 내적 필연성이라고 할만한 절박함을 내재해 있을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신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를 프랑스로 보낸 충동엔 허영도 없었고 요행을 바라는 마음도 없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정진의 과정에서 용솟음치는 내적인 필연성이 그를 프랑스로 끌고 갔다. 그가 선과 형체의 색채로써 표현한 그림은 일거에 우주의 본원, 생명의 본질에 뛰어들려는 박진력의 표출인 동시 그 의지와 정열이 바로 예술일 수 있다는 추상회화의 정취를 말한다. 그런가 하면 그의 조각은 우주와 생명의 운율을 시각화 해 놓은 갖가지 바리에이션이다.원과 호의 직선과 각의 대칭적 조화는 불협화음까지 거느려 결국은 화음으로 이끄는 공간적인 음악이 되어 음악지상의 음감을 구성하는 절묘함을 보인다. 일러 나는 신비라고 하는 것이다. 그 광택, 그 섬세, 그 정교,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생명력의 리듬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붙여야 하는 것일까?"이것으로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느냐", "표현하려 한게 아니고 그자체가 표현된 거다. 요컨대 숨겨져 있던 생명이 그런 미로써 나타난거다. 그러니 무어라고 할수가 없다."이런 선문답처럼 될수 밖에 없다는 것은 시시각각으로 유동하면서도 영원한 생명의 순간순간을 감당할 말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다.다시말하면 언어로써 설명할 수 없고 심행처마저 다한 곳에서 문신의 예술은 스스로 조형하고 있는 것이다.나는 문신과 같은 예술가를 동시대인으로 가졌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그러한 문신을 개인적으로 친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의 자랑으로 안다. 동시에 문신과 같은 존재를 가졌다는 것이 조국의 명예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광수
  • 환기미술관 관장
생명감으로 의태되는 한 그의 작품은 언제나 건강하다... 문신(文信)이 조각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61년 파리에 정착하면서 생활방편으로 한 고성(古城)을 수리하는 작업에 참여한 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70년엔 프랑스 포르-바카레스 야외미술관의 국제 조각 심포지움에 13미터의 거대한 목조각을 제작함으로써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 후, 그는 많은 국제적인 성격의 조각전에 참여하면서 조각가로서 명성을 획득하였다. 그의 조각가로서의 위치는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올림피아드에 높이 25미터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제작 건립함으로써 더욱 확고한 것이 되었다.

그가 파리로 진출하기 전에는 화가로서 널리 알려졌고 주로 따블로 제작에 매진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문신의 조각가로서의 변신은 결코 우연한 동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미 그의 천부적인 조형 의식속에는 조각가로서의 뛰어난 잠재성을 지니고 있었다. 해방 후, 40년대 후반에 발표한 작품 가운데는 몇 점의 목각에 의한 리리프가 낳아있다. 따블로를 장식하는 나무 액자를 군상으로 리리프는 물론이고 최근 한 소장가로부터 기증 받은 목각 리리프도 그 중에 하나인데, 바다에서 그물을 끌어올리고 있는 어부들의 힘찬 동작을 다룬 것이었다.

이들 작품은 이미 그가 훌륭한 조각적 재질을 타고났음을 충분히 반영해주고 있다.50년 까지만 해도 화가로서 더 알려진 그는 당시 몇 안되는 모더니스트로 활약했을 뿐 아니라, 조각분야에 집중적인 작업을 지속해 보이고 있는 70년대 이후에도 데생과 채색화를 병행시켜 왔으며 때때로 따블로 작업도 보여주고 있다. 굳이 그를 어느 한 영역 속에 가두어 둔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조형적 세계의 폭을 좁히는 결과일 뿐 그의 전체적 작업내역과 과정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화가라든지 조각가라든지 하는 종래의 관념에서 벗어나 조형 작가라는 명칭이 더욱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이같은 조형 작가라는 에피세트는 폭넓은 조형영역을 다룬다는 의미 이상으로 한 사람의 뛰어난 장인으로서의 의식에서 부여되어지는 것이 더욱 타당 할 것 같다.그는 작업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언제나 그리고, 다듬고, 쪼는 일의 연속에 자신을 전력투구해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삶과 예술이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 자적하고 있다. 이같은 치열한 장인적 의식은 우리 예술계 풍토에 더없이 귀중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가 아닌 내부적 골격에서 비롯되는 생성의 자발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밖에서 가해지는 방법이기 보다는 안에서 밖으로 진행되는 방법에 지지된다고 해야 옳다. 또 한편, 그의 작품이 주는 강한 인상은 생명적 요소이다.대부분의 형태의 컴포지션이 생태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생성하는 내재적 리듬이 형태를 결정 지워 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확고 부동한 덩어리로 나타나지만 정적인 공간에 가두어 있지 않고 마치 식물이 자라듯 부단한 생성적 요인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곤충, 조류를 연상시키는 형체, 피어나는 식물이나 꽃을 연상시키는 형체이지만 그렇다고 어떤 구체적인 대상을 표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을 닮기도 하고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막상 그것은 그 어떤 것도 아닌 그 자체로서 완고한 독립성을 획득하고 있다. 생명감으로 의태되는 한 그의 작품은 언제나 건강하다. 그러한 건강성은 자연에 대한 경이로 승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평범한 명제가 가장 절실한 경구로서 되살아 나고 있음에서다.이 후, 그는 많은 국제적인 성격의 조각전에 참여하면서 조각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조각가로서의 위치는 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올림피아드에 높이 25미터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제작 건립함으로써 더욱 확고하게 되었다.그가 파리로 진출하기 전에는 화가로서 널리 알려졌고 주로 따블로 제작에 매진했다.그가 파리로 진출하기 전에는 화가로서 널리 알려졌고 주로 따블로 제작에 매진했다.우선, 그의 작품이 주는 강한 인상은 견고성이다. 그것은 재료자체가 주는 질료적 속성에서만 기인되는 것은 아니다. 확고한 자기세계에 대한 신뢰와 여기에 상응되는 조형적 탄력에서 오는 것이며 그러기에 그것은 언제나 정신적 고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한 이 견고성은 대단히 구조적이자 건축적인 조형적 요소에서도 기인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외형적 매스에만 치중되지 않고 친화에서 연유하는 요소일 것이다.그가 자란 곳, 남쪽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 사계절의 순환이 뚜렷한 변화로서 체감되는 곳, 아름다운 풍광, 자연에서 오는 감동은 그에게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과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며, 곧 그의 예술로서 다시 피어날 것이다.

김인환
  • 미술평론가
'대칭과 비대칭'의 절묘한 조화... 우주와 생명의 음률을 시각화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조각가 문신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유아기부터 마산에서 성장했다.스스로 마산이 이세상을 처음 본 곳은 아니지만 예술을 처음 만난곳이니 정신적 예술적 고향이라 할 정도로 마산은 문신 예술의 태동지였다.마산 앞바다 갯벌에서 진흙과 모래로 갖가지 형상을 만들었던 유년의 추억이 훗날 그의 작품세계를 결정지었을 정도다.프랑스로 건너간 문신은 라브넬 옛 성의 수리작업에 참여하면서 조각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이다. 성을 수리하면서 돌을 쪼개고 다듬으며 조형감각을 터득해 유년시절 진흙과 모래로 만들었던 '좌우균제의 원리' 를 이용한 작품을 창작하여 프랑스 유명 평론가들로부터 "세계적인 조각가" 로 수식어가 붙여졌다. 문신의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평가하지 못할 만큼 다양한 의미성을 내포하고 있다.평론가들은 대체로 '간결하면서도 풍만한 선, 다양한 재질로 우주의 생명성을 「대칭과 비대칭」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풀어내는 작가이다'라고 문신을 평가한다. 우선 조각품의 선은 고려자기나 조선백자의 따뜻함이 있다. 구체적 형상에서도 추상적이지만 생명성이 느껴진다.

대지에서 싹이 돋아나 서로 마주보는 떡잎이라든가 새가 날개를 펼치고 허공을 나래짓하는 모습, 혹은 나비 두마리가 입맞춤을 하는 듯한 모습등을 묘사하면서 기본적인 모양새는 대칭화 하면서도 구체적으로는 자연스런 분위기를 창출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생명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조각작품의 재질에 있어서도 나무의 경우 단단한 쇠나무와 흑단나무, 주목 등의 결을 살려내는 자연미에다 소재가 갖는 생명성, 그리고 이들 나무들이 갖는 견고함을 통해 작가의 확고한 예술세계를 엿보게 한다.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작품 역시 재질의 특징을 잘 살려내고 있다.스테인리스의 투명성과 반사성을 이용, 작품의 형상속에 하늘과 주변 풍경에 따라 전혀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생명성에 자연미를 추가시키는 문신 예술의 또다른 특징으로 손꼽힌다. 문신 예술의 결정체라 할 문신미술관 또한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한다.연못과 광장을 중심으로 전시관을 마주보게 했는가 하면 입구에서 부터 마주보는 전시관까지 이어진 광장에 대리석을 모자이크식으로 배열, 미술관 전체를 기하학적 구도로 일체감 있게 조성해 놓았다.

또 스테인리스 조각의 반사성을 이용해 마산 앞바다를 미술관에 끌어 당겨놓은 점과 자신의 작품 형상에 수만개의 작은 전구를 매달아 만든 불빛조각은 밤이면 어둠속에 조각만 선명해 보여 마치 허공에 작품이 떠있게 보이도록 연출한 점은 문신의 탐구심을 읽게 해주는 부문이다. 따라서 문신 미술관은 문신 예술의 결정체 그 자체로 우리 시대의 소중한 문화 자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