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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소개

3·15의거 및 4·19혁명

  • 의의

    3‧15의거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일에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자유당 정권의 조직적인 부정선거에 항거해 일어난 시위다. 3·15의거는 부정과 불의에 맞선 민주시민의 자발적 저항이자,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4‧19혁명

    1960년 4월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맞서 시민들이 저항권을 들고 일어난 민주주의 시민 혁명. 국제적으로는 아시아에서 드물게 성공한 민주 혁명으로 평가된다.

  • 전개 과정

    1960. 3. 15. (3·15 1차 의거)

    정·부통령 선거 실시

    • 자유당 정권의 조직적 부정선거 발생
    • 마산 장군동 제1투표소에서 민주당 참관인과 자유당 당원 사이의 실랑이 도중 투표함이 전도되어 부정선거 발각, 민주당 도의원 정남규 경찰 연행 후 석방
    • 오전 10시 30분경 민주당 마산시당 선거 무효 선언
    • 오후 3시 30분경 민주당 마산시당 당원 30명 및 1천여 명의 학생·시민 등 규탄시위 전개
    • 오후 6시경 개표 진행 예정이던 마산시청에서 재시위 전개, 마산, 창원 전역으로 시위 확대
    • 오후 8시경 무학초등학교~도립마산병원 시위 군중 운집하였으며, 경찰이 시위 군중을 향해 발포

    1960. 4. 10.

    육군 특무부대 501부대, 김주열 군 추정 시신 최초 발견 보고 접수

    1960. 4. 11. (3·15 2차 의거)

    3월 15일 실종되었던 김주열 군의 시신을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인양

    •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이 언론 보도되며 전국적 분노 촉발

    1960. 4. 15.

    이승만 대통령 “마산사태는 공산당 배후에 의하여 조종된 것”이라는 내용의 담화 발표

    1960. 4. 18.

    고려대학교 학생 3,000여 명이 시위 전개 후 해산 과정에서 반공청년당에 피습

    1960. 4. 19. (4·19 혁명)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4·19혁명 시위 본격화
    전국적 시민 참여 속 시위 확대, 경찰의 유혈진압으로 많은 희생자 발생(피의 화요일)

    1960. 4. 24.~25. (3·15 3차 의거)

    마산 지역에서 노인층(할아버지·할머니) 중심의 정권 퇴진 시위 전개

    1960. 4. 25.

    전국 교수단 200여 명,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시국선언문 발표

    • 사회 각계에서 정권 퇴진 요구 고조

    1960. 4. 26.

    부산 시위대가 마산으로 원정 시위 참여

    이승만 대통령 하야 발표

    1960. 4. 27.

    이승만 대통령 「사임서」 제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