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전당소개

6‧10민주항쟁

  • 의의

    6‧10민주항쟁

    1987년 6월, 전두환 정부의 호헌조치에 반대해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인 6월항쟁이 전개되었다. 국민들은 대통령 직선제를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며, 제도권 야당과 재야 세력이 연합해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다. 거센 시민 항쟁은 결국 정부로 하여금 대통령 직선제 도입과 헌법 개정을 수용하게 만들었고, 이는 자유민주주의 기반을 확립하며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본격적인 민주화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 전개 과정

    1987. 1. 14.

    서울대생 박종철 군, 경찰 조사 중 고문으로 사망

    1987. 1. 15.

    언론 통해 박종철 군 사망 소식 보도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死“

    1987. 1. 16.

    정부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발표로 진실 은폐 시도

    • 국민적 분노 확산, 진상규명 촉구 및 민주화 요구 움직임 본격화

    1987. 4. 13. (4·13 호헌조치)

    전두환 대통령, 특별 담화 통해 ‘개헌논의 유보’ ‘현행헌법으로 정부이양’ 발표

    - 대통령 간접선거 유지 입장 고수, 직선제 요구 무시

    1987. 5. 18.

    정의구현사제단 5·18민주화운동 7주기 추도미사 중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축소·은폐 폭로

    1987. 6. 9.

    연세대 시위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피격되어 이한열 군 중태

    • 다음 날인 6.10.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 촉발

    1987. 6. 10.

    ‘6·10 국민대회’ 전국 동시다발 개최

    • “호헌철폐, 독재타도” 외침과 함께 6월 항쟁 본격화

    ※ 마산·창원 지역

    마산 3·15 의거탑 앞에서 시위가 시작되어 출동한 경찰에 의해 시위가 좌절될 뻔했으나 시위대열이 경찰의 봉쇄를 뚫고 마산운동장 쪽으로 진출 성공하여 상황 역전되었음

    이후, 경찰에 의해 무차별 발사된 최루탄 가스가 제16회 대통령 배 축구대회가 진행 중인 마산종합운동장 안까지 퍼져 축구 경기가 중단, 분노한 관중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퇴근 중이던 근로자까지 “호헌철폐”, “직선제 쟁취“, ”독재 타도“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대거 합세

    1987. 6. 10. 이후

    시위 전국 확산, 하루 수십만 명 참여

    • 시민·학생·종교계의 전방위 연대 형성

    1987. 6. 29.

    민정당 노태우 대표위원, ‘6·29 선언’ 발표

    • 대통령 직선제, 5년 단임제 개헌 등 수용

    1987. 7. 9.

    이한열 열사 장례식 행렬(연세대 교정, 신촌 거리, 서울시청 앞에서 백만여 명 시위)

    • 국민 애도 속 민주화 열망 더욱 고조

    1987. 10. 29.

    제9차 헌법 개정안 공포

    • 대통령 직선제 명시, 자유민주적 헌정질서 확립